스콜라스(주)
[세상의 모든것]
게시글 보기
빈센트 반 고흐의 방
Date : 2011-10-12
Name :
Hits : 12912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의 작은 마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1세(1864년)부터 기숙학교를 다녔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15세 때 학교를 그만두게 됩니다. 그 후 1869년부터 숙부가 운영하는 구필화랑 헤이그 지점에서 판화를 복제해서 판매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빈센트는 매우 모범적이고 성실한 청년으로 주변의 인정을 받았으며 1873년 3월 구필화랑 런던지점으로 발령을 받아 영국에서 일했습니다. 하지만 이때부터 신비주의에 빠져 화랑일을 소홀히 했고, 결국 1875년 발령받은 파리지점에서 해고를 당하게 됩니다.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빈센트

 

가난 때문에 학업을 포기해야 했다.

 
 성직자가 되고 싶었던 빈센트는 아버지를 따라 목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신학대학에 지원했으나 꿈을 이루지 못하고 교회로부터도 버림받게 됩니다. 1880년 실의에 빠진 빈센트는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서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미술공부를 위해서 파리로 갔으나 종교에 대한 배신감으로 목사인 아버지와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며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이 시기에 매춘부 출신의 크리스틴과 동거를 하게 되었으나 결국 가족과 동생 테오의 심한 반대로 헤어지게 되면서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했습니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빈센트는 [감자 먹는 사람들 - 1885]과 같이 주로 노동자와 농민 등 하층민의 생활과 풍경을 그렸습니다. 1888년 2월 파리를 떠나 태양이 밝은 아를로 이주하면서 화풍의 변화를 겪었고, [아를의 도개도], [해바라기]와 같은 걸작을 창작하게 됩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정신발작은 빈센트를 괴롭혔고, 동고동락하던 고갱과 다툰 끝에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잘라버렸습니다. 그 후 발작과 입원을 반복하며 불행한 나날을 보냈으며, 자학하듯 작품활동에 몰입했습니다. 결국 1890년 7월 29일 권총자살로 37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지금은 그의 작품을 높게 평가하지만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했으며, 병과 가난의 그늘에서 평생을 고통스럽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20세기 야수파 화가들의 큰 지표가 되었으며, 인류에게 [빈센트의 방], [별이 빛나는 밤], [밤의 카페], [삼나무와 별이 있는 길]과 같은 명작을 선사했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 1889년

 

아를르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 1888년

 
 
 
 파리 생활에 싫증을 느낀 고후는 1888년 2월 남프랑스로 이주한 후 자신을 뒷바라지 해준 동생 테요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신이 기거한 방을 그렸습니다. 가구가 거의 없는 소박한 침실은 고흐의 성격과 가난한 아를 시대의 생활을 그래도 반영하고 있습니다. 벽에 걸린 두 점의 초상화 중 왼쪽은 자신의 초상화이며, 오른쪽은 동생 테요의 초상화입니다. 보랏빛 벽과 노란 침대와 의자, 진홍색 이불과 파란 세숫대야 등 현실과 거리가 있는 날카로운 색채들이 생동감 있는 화가 자신만의 원근법 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비운의 천재 화가 고흐가 저 방에서 수 많은 날들을 고독과 싸우며 작품활동을 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의 눈에는 세상이 실재로 저렇게 보였던 것은 아닐까요? 평범한 사람들이 인정하지 못하는 독특한 생각과 시각을 가진 사람들을 별종이라고 하는데... 어쩌면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대중의 고정관점이 그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당시의 생활상이 느껴지고, 마치 19세기 프랑스의 작은 시골방에 들어와 있는 듯한 이색적인 느낌에 빠져들게 됩니다.
 

뜯어만드는 세상의 고흐의 방은 원작의 느낌을 완벽하게 살리면서도 아기자기한 맛이 살아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뜯어만드는세상 고흐의 방을 만들며 예술적인 영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원화의 느낌이 그대로

 

아를에서의 소박한 삶

 

고흐와 테오의 자화상

 
 
 
코멘트 쓰기
코멘트 쓰기
게시글 목록
Content
Name
Date
Hits
2011-10-12
12912

비밀번호 확인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