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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정문 숭례문
Date : 201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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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례문은 조선시대 한양 도성의 정문에 해당합니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도읍을 한양에 정하면서 4개의 대문과 4개의 소문을 정합니다. 4개의 대문은 유교의 인의예지신(仁義禮知信)에 의해, 동대문인 흥인지문(興仁之門), 서쪽에 돈의문(敦義門), 남쪽에 숭례문(崇禮門), 북쪽에 숙정문(肅靖門)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4대문의 중앙에 해당하는 곳에 보신각(普信閣)을 세웠습니다. 4대문 중 숭례문(남대문)이 한양의 관문역할을 했으며, 가장 큰 규모와 아름다움을 자랑했습니다.
 
 
 
 태조 4년(1395)부터 짓기 시작한 숭례문은 태조 7년(1398)에 완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지대가 낮아서 볼품이 없고 풍수지리설에도 적합하지 않아 세종 29년(1447)에 개축하였습니다. 성종 10년(1479)에는 문루가 기울면서 다시 개축했고, 1908년 일제가 도로를 내기 위해서 숭례문과 연결된 성벽을 허물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2008년 2월 10일 방화사건으로 600여 년을 이어온 아름답고 장중한 숭례문은 1층 문루 일부를 남기고 완전히 전소되게 됩니다.
 

2008년 2월 10일의 치욕적인 숭례문 방화사건

 

한 순간 소실된 소중한 국보1호 숭례문

 
 숭례문 방화사건은 전국민을 충격과 슬픔에 빠지게 했습니다. 또한 안이한 문화재 관리의 허점을 각성하고 이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도성 문의 현판은 모두 가로로 쓰여 있지만, 숭례문만은 세로로 쓰여 있습니다. 이것은 관악산에서 뻗어나는 화기로 인해 경복궁에 화재가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조선의 3대왕 태종의 맏아들 양녕대군이 현판의 글씨를 쓴 것으로 알려지며, 세로로 쓴 글씨가 성문을 막고 누르는 셈이 되어 화기가 경복궁으로 향하지 못할 것으로 여겼습니다.
 
 예를 숭상한다는 의미의 ‘숭례문’이 정식 명칭이었으나 1934년 일본이 ‘남대문’으로 문화재 지정을 하면서 ‘숭례문’보다는 ‘남대문’이 더 자주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996년 역사 바로 세우기 사업의 하나로 일제가 지정한 문화재에 대한 재평가작업을 하면서 ‘숭례문’으로 명칭을 환원했습니다. 총 10칸의 2층 건물이 화강석의 무재개문을 중앙에 둔 거대한 석축위에 세워져 있으며, 지붕은 우진각지붕으로 상하층 모두가 겹처마로 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조선의 건축기술이 얼마나 발달해 있었는지로 알 수 있습니다. 앞서 밝히 바와 같이 숭례문은 현존하는 성문 중 가장 규모가 큰 조선 초기의 건축물입니다.
 
 
 2008년 2월 10일 방화사건으로 전소된 숭례문이 4년 10개월만인 2012년 12월에 국민의 품으로 돌아옵니다. 화재로 소실된 문루를 복원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제강점기에 철거되었던 양쪽성벽의 일부를 복원하여 최대한 원형을 살린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숭례문이 다시 열리는 날이 너무나도 기다려집니다.
 
한 순간 소실된 소중한 국보1호 숭례문
 
복구가 완료될 ‘국보 1호’ 숭례문 조감도
숭례문 복원 소식은 문화재청 홈페이지를 통해서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문화재청 홈페이지 : http://www.cha.go.kr
 

 뜯어만드는 세상 서울의 정문 숭례문은 고증을 통해서 원형을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습니다. 오는 12월 국민의 품으로 돌아올 아름다운 국보 1호 숭례문을 미리 만나볼 수 있습니다. 또한 문화재의 소중함을 학습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완벽하게 재현된 숭례문

 

천정의 그림까지 재현했습니다.

 

멋진 수문장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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