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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Date : 2013-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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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동남쪽으로 약24km 떨어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에 위치한 남한산성은 경기도 광주시, 하남시, 성남시에 걸쳐 있습니다. 남한산성을 백제, 통일신라, 고려, 조선 등 오랜 시대에 걸쳐 한강유역 및 수도에 대한 방어를 담당하였고, 그 긴 시간 동안 단 한번도 함락당한 적이 없는 천혜의 요새입니다.

 
 

전체11.7km(본성 9km, 외성 2.71km)의 남한산성은 국가사적 제 57호로 5개의 옹성과 4대문 등이 노송군락 주변 자연경관과 함께 보존되어 있습니다. 특히 조선시대 인조, 숙종, 영조, 정조기의 다양한 축성기법의 표본이 잘 남아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1231년 8월 몽고는 고려를 침공하였습니다. 개경을 포위한 몽고군은 계속 남하하여 남한산성(南漢山城)에 이르렀습니다. 이때 남한산성은 몽고군으로부터 여러 차례 공격을 받았으나, 광주부사 이세화의 지휘하에 성안의 모든 백성이 힘을 합쳐 이들의 공격을 막아냈습니다. 그래서 몽고군은 광주성에 대한 공격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몽고군이 남한산성을 포기하고 남하한 후 몽고와 고려조정 간에 화의가 이루어져 몽고군은 1232년 정월 요동으로 철수하였습니다.
같은 해 몽고군이 다시 침입해 왔습니다. 흔히 몽고군의 2차 침입으로 불리는 이때는 살례탑이 이끄는 몽고군이 남한산성을 침공하여 모든 전략을 다해 공격했으나, 이세화가 뛰어난 전술을 구사하여 몽고군을 사로잡거나 죽인 것이 대단히 많았기 때문에 몽고의 대병력도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몽고군은 2차에 걸쳐서 고려를 침공했으나 남한산성만큼은 함락하지 못했다.

 

남한산성은 경기도 광주의 80%에 해당하는 산을 잘 활용해서 축성하였다.

 

1636년 12월 청 태종이 12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공하는 병자호란이 일어났습니다. 청나라 군대가 빠르게 한양 인근까지 접근하였고,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하려다가 급히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였습니다.
산성으로의 피난이 워낙 급박하게 이루어져 미쳐 식량을 운반하지 못하고, 전국 각지에서 구원병들이 일어났으나 남한산성에 도착하기 전에 모두 궤멸되어 남한산성은 고립무원의 절망적인 상태가 되었습니다. 강화도 함락 사실을 확인한 조정은 더 이상 버틸 힘을 상실하고, 1월 30일 인조가 성을 나아가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머리를 조아려 항복하게 됩니다. 이를 삼전도의 굴욕이라 합니다.
패전 원인은 조선군은 1만 2천명 정도였으나 청은 이의 10배에 달하는 병력차이와 군사의 숙련도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은 청의 군대에 비해 절대적인 열세 속에서도 남한산성과 같은 천혜의 요새가 있었기에, 왕실이 피신하여 47일간 항전할 수 있었습니다.

조선을 침공하는 청나라 군사

 

삼전도에 나가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는 인조

 

※ 삼전도의 굴욕
인조 17년(1639년) 청 태종 홍타시는 한강변의 삼전도에서 인조에게 굴욕적인 항복 의식을 행했습니다. 문헌에 따르면 청 태종은 자신이 앉아 있는 단에서 백보 앞까지 자갈을 깐 후 인조로 하여금 베옷을 입고 엎드려 기어오도록 한 후, "대죄를 용서하여주소서"라고 빌면서 '삼배구고두'를 행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삼배구고두는 세번 절하고, 절을 할 때마다 세 번 머리는 땅에 조아리며 용서를 비는 것입니다. 인조는 무릎이 까지고 이마가 깨져 피가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청나라의 관리들은 땅바닥에 머리가 부딪치는 소리가 작다며 더 세계 박으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왕이 외국의 왕에게 용서를 빌어야 했던 삼전도의 굴욕은 치욕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구한말 일본에 대항하는 의병들이 1896년 봉기하여 남한산성을 거점으로 삼았습니다. 남한산성을 점거한 의병은 광주, 이천, 양근의 의병부대로 구성되었으며, 그 수는 1,600명에 달하였습니다. 의병들은 삼남지방의 의병과 합세하여 서울로 진격 후 일본군을 물리치고 고종을 환궁시킬 계획이었으나 중간에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남한산성은 1907년 의병의 근거지로 쓴맛을 본 일본이 산성의 무기를 수거하고 폭파를 단행하면서 사찰이 불에 타 소실되고, 산성 내 많은 시설물이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나 남한산성은 일제 강점기 아래에서 3.1운동을 비롯하여 해방운동을 활발히 펼쳐 항일민족운동의 성지로 남아있습니다.

남한산성은 구한말 항일운동의 본거지로 활용되었다.

 

1950년대에 들어 남한산성은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고 행궁터에 남한산성과 관련된 문화유산과 물산을 전시한 경기도 물산진열관이 지어졌습니다.
1971년 남한산성이 도립공원으로 지정되고, 1975년부터 그동안 방치되었던 남한산성 문화재에 대한 부분적인 보수 정비가 시작되었습니다. 1997년까지 성곽 5.1km를 보수하면서 남한산성은 조금씩 제 모습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1974년 광지원리에서 남한산성을 관통하여 성남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포장되고 1980년대 중반 이후 국민들의 생활에 여유가 생기고, 자가용이 보급되면서 남한산성은 볼거리가 있고 찾기 편리한 서울 인근의 유수한 문화유적지로 변모하며 시민과 함께하게 됩니다.

잘 정비된 남한산성의 성곽

 

남한산성의 유수한 문화유적지

 

남한산성은 경기도립공원으로서 주봉인 청량산(497.9m)을 중심으로 몇 개의 높고 낮은 봉우리로 연결되어 있으며, 광주시와 성남시, 그리고 하남시의 3개 도시에 걸쳐 있습니다. 도심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풍부한 자연환경과 역사,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곳입니다. 남한산성은 생태적 가치로서도 여느 산에 뒤지지 않습니다.
높고 낮은 봉우리가 여럿 이어져 계곡이 많고 물이 맑아 가재나 도롱뇽을 쉽게 볼 수 있으며, 여름 밤엔 반딧불이를 만날 수 있습니다. 또 흔히 보기 어려운 야생화와 나무들이 숲 속 곳곳에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이기도 합니다.

자연과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하는 숲

 

다양한 희귀종이 서식한다.

 

남한산성에 들어서게 되면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이 새소리입니다. 다양한 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며 숲을 거닐게 되면 친근한 곤충부터 동물들까지 다양한 야생동물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꾀꼬리, 오색 딱따구리, 청딱따구리, 동고비, 꿩 같은 새들, 다람쥐와 청서는 물론 족제비와 고라니 같은 동물들이 어우러져 건강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1급수에만 서식하는 도롱뇽

 

다양한 새들의 휴식처

 

남한산성의 탐방로는 도심에서 가깝고 잘 보존된 역사와 자연, 문학이 숨 쉬는 곳입니다. 총 5개의 탐방로는 생명, 법도, 반추, 의지, 미학 등 각각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제1코스 역사와 함께 소요하는 생명의 길
숲이 가진 생명력과 산성 곳곳에 전하는 역사를 배우고 느끼는 코스로 산성종로를 출발하여 침괘정, 영월정을 거쳐 수어장대로 오르는 코스. 아름다운 소나무 숲길, 피톤치드 가득한 산길을 걸으며 숲의 충만함과 곳곳에 숨어 있는 역사이야기를 만나는 길이며 생명이 함께 하는 길입니다.
제2코스 행궁과 함께하는 법도의 길
남한산성 행궁을 소개하고 조선 제16대 인조 임금의 고뇌와 숙종의 자신감, 영조 정조의 문화의 르네상스를 꿈꾸었던 행궁이야기와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의 한 구절을 되새기며 걷는 길입니다. 남한행궁을 둘러보고 숭열전을 올랐다가 영월정을 지나 산성종로로 돌아오는 코스입니다.
제3코스 기억과 함께하는 반추의 길
병자년(1636) 전쟁의 기억을 반추하고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길입니다. 기억과 함께하는 반추의 길에는 비상시를 대비해 군사훈련과 무술연마를 하던 연무관, 조선 선비의 절개를 돌아보게 하는 현절사, 터만 남은 동쪽 지휘소 동장대지, 성안을 꿰뚫을 수 있는 곳 벌봉으로 오르는 길이기도 합니다.
제4코스 성곽과 함께하는 의지의 길
남한산성의 절반 거리를 성곽을 따라 걷게 되는 길로 산성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길입니다. 성곽 둘레를 수놓는 울창한 나무들이 계절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습니다. 남문을 시작으로 천주사지, 수어장대, 병암을 거쳐 서문에 이르는 길은 탐방로의 전반부에 해당하고, 서문에서 연주봉 옹성을 지나 북문으로 내려오는 길은 탐방로의 후반부입니다.
제5코스 산성을 따라가는 옹성 미학의 길
옹성이 몰려 있는 성곽의 남동쪽 길을 따라 펼쳐지는 5코스는 남문에서 시작해 3개의 옹성을 차례로 지나 동문을 거쳐 지수당을 지나 출발점 산성종로로 가는 구간입니다. 옹성의 생동감 넘치는 형태와 예술적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옹성 미학을 따라 가는 길은 남한산성의 매력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이야기가 있는 길을 따라가다보면 남한산성 역사관, 만해기념관, 신익희선생 동상, 남한산초등학교, 검단산 계곡과 고골계곡 등 다양한 볼거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도시 근교에 위치한 남한산성은 일일여행코스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남한산성을 쌓은 이후 광주부의 고을을 산성 안으로 옮김으로써 산성의 위상이 확립되었습니다. 더욱이 남한산성내의 행궁은 인조 갑자년(1624년) 산성을 축성할 때 함께 지어진 것입니다. 행궁은 크게 상궐과 하궐로 구성되어 있고 좌전과 우실, 재덕당, 한남루, 인화관 등 모두 70여 동에 달했다고 합니다. 임금이 거처할 행궁은 상궐이 73칸(間) 반, 하궐이 154칸으로 모두 227칸의 규모입니다.

행궁은 임금이 지방으로 행차할 때 임시로 거처하는 곳으로서 '행재소'라고도 합니다. 남한산성의 행궁도 세종의 능인 영릉(英陵)이나 효종의 능인 영릉(寧陵)에 참배하기 위하여 인조 2년(1624) 9월 서장대 아래쪽에 세워졌습니다.

 

남한산성은 지난 2010년 1월 10일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에 잠정목록으로 정식 등재됐으며 2011년 2월 8일 문화재청이 선정한 우선등재 추진 대상에 선정된 바 있습니다. 2014년 6월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최종적으로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결정될 예정이며, 그 중심에는 남한산성행궁이 있습니다.
남한산성과 관련된 자세한 정보는 남한산성문화관광단 홈페이지(www.ggnhss.or.kr)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3D퍼즐 뜯어만드는세상 남한산성행궁은 인조 때 만들어진 상궐과 하궐을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습니다.

※ 남한산성행궁 조립 과정과 후기는 스콜라스 블로그(http://scholaslove.blog.me)에서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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