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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
Date : 2013-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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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은 원형 경기장이자 로마 건축을 대표하는 고대의 유적입니다. 원래 이름은 ‘플라비우스 원형경기장’으로, 서기 72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착공하여 그의 아들인 티투스 황제 때 완성되었습니다. 당시 로마가 지배하는 여러 곳에 원형 경기장이 건축되었으나 콜로세움의 웅장함에 비할 바는 아니었습니다. 콜로세움은 네로 황제의 호화 별장에 딸린 호수가 있던 넓은 부지에 지어졌으며, 넓이 156미터, 길이 188미터에 달하는 타원형의 건축물입니다.
 
콜로세움은 검투사들의 시합과 맹수와의 싸움, 거대한 해전을 재현하며 로마시민들에게 최고의 오락꺼리를 제공했습니다. 약 5만 명의 로마시민을 수용할 수 있었으며, 1층부터 4층까지 고전 건축의 전형적인 배열을 보여주며 완벽한 공공시설로서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콜로세움은 76개의 출입구를 통해서 약 5만 명에 달했을 관중이 빠르게 출입할 수 있었으며, 지하의 검투사와 맹수들을 지상의 경기장으로 등장시킬 수 있는 기계장치가 구비되어 있었습니다. 내부 곳곳에는 물을 마실 수 있는 식수대가 설치되어 있는 등 오늘날의 스타디움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편의성을 제공했습니다.
 
콜로세움이 완성되었을 때 100여 일 동안이나 격투 행사가 열렸는데, 그 기간 동안 자그마치 9천 여 마리의 야생동물과 2천 여 명의 검투사가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 박해 시대에는 신도들을 학살하는 장소로도 이용되었습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잔인한 측면이 있었으나 고대 로마 시민들에게 원형 경기장에서의 경기는 매우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공연으로 인식되었습니다. 로마의 시민들은 거의 매일 콜로세움에서 열리는 다채로운 이벤트에 심취했으며 집단적인 욕망을 마음껏 분출했습니다. 이를 통해서 당시 로마에 내재되어 있는 사회적인 갈등이나 모순을 망각하며 쾌락을 추구할 수 있었습니다.
 
로마의 황제를 포함한 정치가들은 원형경기장에서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여 정치적인 입지를 굳히고 내부적인 화합을 도모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로마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을 키워주고 일체감과 공동체의식을 느끼게 해주는 중요한 매개체로서 콜로세움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황제를 콜로세움에서 시민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으며, 자극적인 볼거리를 제공하며, 동시에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적극적으로 전파했습니다. 콜로세움은 단순한 원형 경기장을 넘어 오늘날의 매스미디어와 같은 역할을 수행했으며, 이러한 이유로 ‘로마황제의 정치무대’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콜로세움은 네로황제의 재위 당시에 지어진 거대한 별장 황금 궁전의 인공 호수 자리에 세워졌습니다. 베스파시아누스는 폭군 네로 황제의 개인적인 공간을 공공장소로 바꾸면서 정치세력을 강화하고 로마시민의 통합을 도모하고자 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원형 경기장이 도시의 외곽 지역에 있었던 것과 달리, 콜로세움은 도시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완성 당시 높이가 48.5미터, 길이가 188미터, 넓이가 156미터에 이르는 등 최고의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수용인원은 5만명에 이르렀고 현대적인 스타디움과 비슷한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콜로세움이 세워졌을 당시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 '로마의 평화')라고 불리는 기간으로 로마시대 최고의 번성기였습니다. 1,000개가 넘는 공중목욕탕과 28개의 도서관, 수많은 신전과 대규모 원형 경기장 등 시민을 위한 공공시설이 넘쳐났고, 귀족과 부자들은 거대한 저택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습니다. 로마시대는 문화, 예술, 종교, 정치 등 전 부문에서 이전의 시대와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특히 기원전 3세기 후반에 발명된 콘크리트는 대리석을 밀어내고 로마의 주요 건축물의 재료가 되었습니다. 콜로세움과 같이 복잡한 건축물도 콘크리트가 있었기에 가능했고, 도로와 수로 같은 기간시설들은 오늘날까지도 원형을 유지할 정도로 견고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이처럼 번성했던 로마제국은 4,5세기경 이민족의 침입과 내부적인 요인들로 인해서 여러 개의 독립국가로 분열되며 쇠망하게 됩니다.
 

1층부터 4층까지 고전 건축의 전형적인 배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층은 높이 10.5미터의 도리아식 반원주, 2층은 높이 11.85미터의 이오니아식 기둥, 3층은 11.6미터의 코린트식 기둥으로 되어 있고, 4층은 오늘날의 스타디움 지붕처럼 햇볕을 피할 수 있게 벨라리움이라는 천막을 지탱하는 벽으로 되어 있습니다.

 

콜로세움의 바닥은 미로처럼 생긴 벽과 기둥이 있었으며, 격리된 각각의 방에는 검투사와 맹수의 대기실이 자리했습니다. 시합이 열릴 때에는 목조로 된 바닥을 깔고 흙을 덮어 운동장을 설치했으며, 해전을 재현할 때는 경기장 내부에 설치된 수로를 통해서 물을 채웠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말 그대로 다목적 경기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관람석 쪽으로 연결된 76개의 출입구를 통해서 5만 명이 넘는 로마시민들이 빠르게 입장했을 것입니다. 또한 계단과 독립된 공간, 즉 갈레리아가 있어서 오늘날의 매점과 같이 노점이 들어섰으며 이집트산 콩이나 음료수를 팔았으며, 사람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콜로세움은 608년까지 경기장으로 사용되고 중세에는 군사적 요새로 이용되었습니다. 그 이후 교회나 다른 건물을 건축하기 위해서 자제를 조달하는 장소로 활용되면서 오늘날과 같이 다소 황폐한 형태를 띄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유명한 로마의 바르베리니 궁전도 콜로세움에서 뜯어온 돌로 지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무참히 파괴되었습니다.

 
 
 

 

 콜로세움은 바티칸시티, 트레비분수, 콘스탄티누스 개선문과 함께 로마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관광명소입니다. 특히 콜로세움을 비추는 아름다운 조명은 시간이 흘러도 퇴색하지 않는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그대로 전하고 있습니다.
 

뜯어만드는세상 ‘콜로세움’은 복원된 원형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내부의 모습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재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웅장한 콜로세움

 

옆면이 열리는 구조

 

EBS 위대한 로마 공식 협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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