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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
Date : 2013-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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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 5월 6일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 거대한 건축물이 개관하고 방문객을 맞이하기 시작했습니다. 높이가 301m에 이르는 이 철골구조물은 파리시내의 어느 곳에서도 잘보이는 거대한 규모였습니다. 프랑스혁명 100주년 기념으로 개최된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선보인 이 철골구조물이 바로 에펠탑(Eiffel Tower)입니다. 에펠탑은 프랑스의 건축가이자 탑을 설계한 구스타브 에펠(Alexandre Gustave Eiffel, 1832~1923)의 이름에서 따온 명칭입니다. 개관 당시 거대한 외관으로 인해 파리의 아름다운 경관을 해친다는 비판을 받았고, 20년간 설치 후 해체한다는 단서조항이 붙을 만큼 에펠탑은 시민들의 환영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전 세계 여성들이 프로포즈를 받고 싶은 장소 1위로 뽑힐 만큼 큰 사랑을 받고 있으며, 파리를 넘어 프랑스를 상징하는 국보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1884년 뉴욕항 리버티섬에 세워진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의 독립100주년을 기념하여 프랑스 국민이 기증한 것입니다. 자유의 여신상의 내부 설계에 참여한 구스타브 에펠은 몇 년 후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파리 센강 서쪽 강변에 위치한 드넓은 샹 드 마르스 공원 (Champ de Mars)에 에펠탑을 건축하게 됩니다. 자유의 여신상과 에펠탑은 억압과 압제로부터의 해방을 상징한다는 면에서 서로를 닮아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자유의 여신상은 대서양을 건너온 이민자들에게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에펠탑 또한 산업화와 철의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상징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에펠탑에 쓰인 철은 7300여 톤이며, 2년 2개월 5일의 공사 기간을 거쳐서 완공되었습니다. 탑의 높이는 약 301m 에 달했고, 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돌을 건축물의 주재료로 사용했던 시대에는 감히 꿈꾸는 것 조차 어려웠던 거대한 구조물을 짧은 시간에 완성한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앞으로의 미래가 과거와 달리 효율과 속도를 통해 경쟁할 것임을 알리는 서막이기도 했습니다. 에펠탑은 1930년 뉴욕의 크라이슬러 빌딩이 세워지기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의 자리를 지켰고, 덕분에 프랑스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유를 상징하는 삼색기(프랑스 국기로 파란색은 자유, 흰색은 평등, 빨강은 박애를 상징함)를 게양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에펠탑이지만, 건립 초기에는 혐오스러운 흉물 취급을 받았습니다. 돌로 된 멋진 건축물이 빼곡하게 자리잡고 있던 파리의 중심부에 거대한 철골구조물을 세운다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에펠탑을 설계하고 만든 구스타브 에펠은 대규모 철골 교량 공사를 주도하면서 세계최고의 철골구조물 건축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습니다. 이를 반영하듯 에펠탑은 기존의 탑이라는 느낌보다는 교량을 세워놓은 듯한 트러스트 형태를 띄고 있었고, 아름다움을 전달하기에는 적당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공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에펠탑의 건립을 반대하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고, 한 수학 교수는 과중한 하중을 견디지 못한 탑이 결국 붕괴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당시 많은 지식인들과 시민들은 예술도시 파리의 아름다운 미관을 망치는 혐오스러운 에펠탑의 건립을 반대했으며, 소설가 모파상, 에밀졸라, 알렉상드르 뒤마, 작곡가 샤를 구노 등 당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이 이에 앞장섰다고 합니다. 특히 모파상은 에펠탑을 혐오하고 싫어했던 대표적인 유명인으로, 파리시내에서 유일하게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탑의 2층 식당에서 점심을 즐길 만큼 반감이 심했다고 합니다. 그는 1890년 발표한 단편소설 ‘방랑생활’을 통해서 다음과 같이 에펠탑을 혹평했다고 합니다. “나는 에펠탑 때문에 파리, 아니 프랑스를 떠났다. 이 거대하고 흉측한 뼈대를 벗겨버리지 않는다면 우리 세대를 어떻게 생각할지 염려스럽다”

 
 
파리 만국박람회를 통해서 프랑스 제철산업의 우수성을 세계에 자랑하고 싶었던 정부는 설계를 공모하였고, 수백 개의 응모작 중 에펠의 설계를 최종적으로 채택했습니다. 당시 국제적인 교량 건설회사를 운영하고 있던 에펠은 1886년 유명한 뉴욕 자유의 여신상 건설에 참여해 철근 구조물 부분을 제작하는 등 철과 관련된 구조물의 설계와 제작에 일가견이 있었습니다. 1887년 1월 28일 수많은 파리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에펠탑 건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에펠은 약 7,000톤에 이르는 탑의 본체를 지탱하기 위해서 4개의 콘크리트 기초 위에 4개의 철각을 세웠습니다. 에펠탑을 만들기 위해서 사용된 큰 들보와 철판이 1만 3,038개, 리벳만 해도 105만 864개에 달하는 엄청난 물량이었습니다. 에펠은 불과 2년의 짧은 시간 안에 기중기를 이용해서 엄청난 물량을 부품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조립했습니다. 총 25개월 동안 300여 명의 노동자들이 고공작업에 동원되었고, 파리시 한복판에 세계 최고 높이의 거대한 철의 구조물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수많은 사람들이 파리의 흉물이라고 비아냥거렸지만 박람회 기간 중에 무려 600만 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관람객이 세계 각국에서 몰려와 에펠탑의 위용에 감탄했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서 에펠탑은 철의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기념비로 공인 받게 됩니다.
 
 
만국박람회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에펠탑의 운명은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당초 에펠탑을 설립한 장소를 20년으로 한정하여 임대를 했던 건설사에서 1910년 에펠탑의 해체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에펠탑에 익숙해진 수많은 프랑스사람들이 이를 반대하면서 슬픈 운명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20년간이나 좋든 싫든 매일 에펠탑을 바라보고 살아야 했던 파리 사람들에게 탑은 이미 생활의 일부가 되어 있었습니다. (자주 보면 익숙해지고, 좋아지게 된다는 의미의 에펠탑효과가 여기에 기인함) 1909년 에펠탑의 존속 여부를 결정하는 위원회의 투표에서 6:5로 계속 존속하는 것으로 결정되며 오늘날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에는 에펠탑 꼭대기에 전파를 송출하는 통신 시설을 설치하면 군사상 효용가치가 매우 높다는 의견이 큰 설득력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 후 1918년에는 라디오 방송을 위한 장치가 설치되었고, 1957년에는 텔레비전 안테나가 설치되었으며 현재는 기상관측 장비와 항공운항 장비까지 추가로 설치되어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에펠탑을 보기 위해서 매년 전세계에서 4,0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프랑스를 찾고 있습니다. 또한 파리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코스이며, 전세계의 유명 랜드마크 중 예술작품과 상품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등 엄청난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특히 1985년부터 시작된 야간 조명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환상적이어서 전세계의 연인과 신혼부부들의 포토존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 에펠탑 이용 TIP!
*관람시간:
1 월1일~6월15일, 9월3일~12월31일 : 오전 9시30분~ 오후 11시
6월 16~9월2일 : 오전9시~자정 *휴무일 없음
*위치:
메트로 6호선 Bir Hakeim역, 버스 42·69·72·82·87·91번 Champ de Mars 방향, RER C선 Champ de Mars역
*에펠탑 공식 홈페이지 http://www.tour-eiffel.fr
 

뜯어만드는세상 에펠탑은 조립하는 재미와 완성도가 뛰어납니다. 또한 LED조명이 포함되어 있어서 어두운 곳에서 더욱 빛을 발합니다. 뜯어만드는세상 에펠탑을 만들고 파리의 정취를 만끽하는 소중한 시간을 마련해 보세요!

 

파리를 상징하는 랜드마크

 

조립하는 재미가 듬뿍

 

환상적인 LED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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